조선총독부는 무능했나, 악의적이었나?

많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은 일제의 식민지 잔재가 잊힌 독립운동가 후손을 드러내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는 한국 근대의 뿌리가 일제 식민지기에 있다는 고전적 설명과 연결된다. 개인과 사물의 특성을 기록하고 이를 자원으로 환원하는 힘이 근대의 본질이라면, 그 시작은 식민지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된다.

 

서호철의 저서 '조선총독부의 조사와 통계'는 ‘근대성’과 ‘식민성’에 대한 통념을 흔든다. 조선총독부는 한반도를 지배한 정부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조사’는 단순한 연구나 설문을 넘어서는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총독부는 인구와 토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 양식까지 조사하려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체계적이지 않고 주먹구구식이었다.

 

특히 농업통계에서의 불일치는 두드러진다. 1918년과 1919년의 쌀 재배면적이 크게 수정된 것은 총독부의 무능을 드러내는 사례이다. 국세조사 역시 1925년에야 간신히 이루어졌고, 조선인들은 이를 불신했다. 총독부가 인구를 1700만으로 발표한 것은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하며, 이는 당시 식민지 통치의 비효율성을 보여준다.

 

식민지기에 대한 기존의 관점인 '수탈론'이나 '근대화론'은 총독부의 능력을 과신했을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시각은 그들의 무능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인 조사와 통계조차 신뢰할 수 없었던 현실은 식민지기 연구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책은 이러한 사실을 흥미롭게 드러내며, 식민지기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조선총독부의 조사와 통계, 서호철 지음, 동북아역사재단 펴냄, 3만 원